성경의 식물들 (3): 백향목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식물(나무) 가운데 하나가 백향목(cedar tree)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서 70회 정도 언급됩니다. 백향목은 상록수의 일종으로 130피트(약 40미터)까지 높이 자랍니다. 길게는 3천 년 정도를 살 수 있다니 현재 있는 백향목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나무들입니다.

 

백향목은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지중해 연안 레바논까지 서식합니다. 워낙 높고 곧게 자라기에 건축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서까래를 비롯한 주요 건축물에 백향목이 제격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백향목의 높이는 위엄의 상징이어서, 고대 바벨론을 비롯해서 신을 섬기는 신전의 입구나 주요 구조물에 백향목을 사용했습니다. 백향목의 잎사귀나 줄기는 향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습니다.

 

성경에서도 다윗과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왕궁과 성전을 지을 때 레바논산 백향목을 수입했습니다. 솔로몬은 레바논왕 히람과 계약을 맺고 백향목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았습니다. 하지만 레바논의 백향목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나라의 교만함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구약 성경의 예언서에는 교만한 왕이나 세상의 제국을 백향목에 비유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백향목의 위엄이 교만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경고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유업을 이어서 성전을 건축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지 480년이 지났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과 사사 시대를 지내면서 하나님을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급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평소에는 바알을 비롯한 가나안 토속신을 섬겼습니다. 왕이 없어서 이웃 국가들과 맞설 수 없다는 백성들의 불평을 듣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는데 사울도 제 갈 길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들레헴 이새의 아들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으셨고, 다윗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다윗 왕국을 세웠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 성전을 직접 짓고 싶었지만, 손에 피를 많이 묻힌 다윗 자신이 아니라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위임해야 했습니다. 대신 다윗은 성전을 지을 모든 재료를 준비해 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다윗의 뜻을 좇아서 솔로몬이 성전을 짓습니다. 화려한 성전입니다. 성전 건축의 마무리로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 지성소를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백향목으로 벽을 가로막아서 지성소를 만들었습니다. 이밖에도 성전의 모든 장식이 백향목입니다. 성경에서 백향목은 성전 건축 뿐만 아니라 죄를 깨끗이 씻는 정결 예식에도 사용되었습니다(레14:6). 의인을 백향목에 비유하는 말씀도 있습니다(시 92:12). 우리도 백향목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사용되기 원합니다. -河-

신앙에 대해서

좋은 아침입니다.

 

1.

구름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구름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눈으로 보면 하늘에 구름이 뭉쳐서

뭉개 뭉개 떠 있지만,

비행기를 타봐서 알듯이 구름은

그냥 수증기의 모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니 구름을 잡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허풍입니다.

 

초등학교 국어책에

무지개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어떤 소년이 무지개를 잡으러 들판을 달려갑니다.

앞에 있는 무지개를 좇아서 산꼭대기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무지개는 늘 앞에 있을 뿐 잡을 수 없습니다.

 

구름을 잡는 것이나

무지개를 좇는 것이나 비슷합니다.

 

2.

때로는 우리의 신앙과 신앙의 용어와 표현이

구름 잡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선하게 살아야지요

믿음이 적어서요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등등”

– 실체가 있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릴 때도 있습니다.

 

무지개를 좇아가는 모습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기도하면 다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해요.

사랑하기 원합니다. 등등”

– 맞는 말인데, 가끔은 무지개처럼 보이고 들립니다.

 

3.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능하면 구름 잡는 이야기를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무지개처럼 희망 고문같은 논조도 가능하면 지양합니다.

 

그래도 우리 신앙 자체가 영적인 면이 있고

추상적인 (어려운 표현으로 형이상학적인) 요소가 있기에

세심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구름 잡는 얘기로 빠지기 쉽고

그것을 피하려는 것 자체가 솔직히 불가능할 때도 많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제 모습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일 정도로 증거하는 것이라는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실제적이길 바랍니다.

추상적이고 영적으로 보이는 신앙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입술과 손과 발로 표현될 때는 구체적이길 원합니다.

 

미운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입술,

어렵고 약한 사람에게 슬쩍 내미는 손길,

먼저 가서 궂은 일을 손수 해내는 발길,

악한 말을 몰아내고 선한 말로 가득한 언어습관!

 

믿음으로 살고 은혜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제로 보여주는

감사, 평안, 기쁨, 찬양, 그리고 자족!

 

2019년 사순절을 맞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눈에 보이도록 표현하고

그대로 사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개역개정)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새번역)

Now faith is the assurance of things hoped for, the conviction of things not seen.(Heb 11:1, ESV)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믿음이 증거가 되고 실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3. 7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의 식물들 (2): 살구나무

지난 시간의 떨기나무에 이어서 오늘은 살구나무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살구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샤케드>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히브리어 <샤케드>는 살구나무가 아니라 아몬드 나무입니다. 개역 개정에서 살구나무라고 한 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도리어 성경에서 살구나무는 사과나무와 관련이 있습니다(아가서 2:3).

 

아몬드 나무는 이스라엘이 위치한 팔레스타인과 중동에서 흔히 볼 수 있고 16피트(약5미터) 정도까지 자라는 큰 나무입니다. 아몬드 나무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1월이나 2월에 흰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벚꽃이 피면서 봄이 오듯이 이스라엘에서는 아몬드 꽃이 피면서 봄이 찾아왔습니다. 겨울을 잘 지켜냈으니 봄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는 표시였습니다.

 

갑자기 아몬드 나무로 바꾸면 생소하기에 잘못된 번역인 줄 알지만, 개역 성경을 따라서 “살구나무”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개역 성경에서 살구나무는 여섯 번 등장합니다. 하란의 외삼촌 집에서 지내던 야곱이 품삯으로 양을 받기로 하면서 살구나무를 비롯한 버드나무 등의 껍질을 벗겨서 양들에게 보이니 그들이 얼룩진 양을 낳았습니다(창30:37).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면서 야곱이 가족을 이끌고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는 이집트로 피난갈 때, 이집트에서 구할 수 없고 가나안 땅의 특산물인 아몬드(개역 성경은 아몬드를 순우리말인 감복숭아 나무라고 번역함)를 가져갔습니다(창 43:11).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성막을 지었는데, 성막에서 사용하는 순금 등잔대 받침에 살구꽃 형상을 새겼습니다. 이것은 살구나무와 같은 발음을 가진 히브리어 동사 <샤카드 (“지키다”)> 때문일 것입니다. 등잔대의 살구꽃 형상은 하나님께 나오는 이스라엘을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을 뜻했습니다 (출37:19).

 

레위인 고라가 성직에서 소외되었다는 이유로 아론과 모세에게 반기를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땅이 갈라지면서 고라와 그를 따르던 무리를 삼켰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셔서 지파별로 지팡이를 가져와서 증거궤 앞에 하룻밤을 놓아두도록 했습니다. 다음 날이 되자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살구 열매가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그를 주목하신다는 뜻이었습니다(민 17:8).

 

마지막으로 살구나무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실 때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샤케드)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끝까지 지켜보겠다(샤카드)는 뜻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살구나무(아몬드나무)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연결됩니다. 또한 하나님 백성이 주님 앞에서 깨어있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겨울이 지나고 가장 먼저 피는 살구꽃처럼 새달을 맞는 우리의 신앙도 꽃피우길 원합니다. -河-

무익하고 헛된 것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느덧 2월의 마지막 날을 맞았습니다.

권사님들 말씀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고,

한 달이 때로는 한 해가 순간에 지나감을 보냅니다.

 

또다시 새달을 맞으면서

“세월을 아끼라”(엡5:16 )는 말씀이 저절로 떠오르고

우리 의지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이번 주 큐티 말씀은 디도서였습니다.

디도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믿음도 좋았지만 사려 깊고 마음이 따뜻한 그리스도인이었던 같습니다.

바울이 디도를 통해서 위로를 받을 정도였습니다(고후 7:6).

 

바울은 그레데(Crete) 섬을 방문했다가

그곳 교회와 성도들의 삶이 엉망진창인 것을 보고

디도를 그레데 교회의 임시 목회자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레데 교회는 여느 교회가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들은 물론 노예까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레데 섬에 사는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게으르고,

거짓말을 일삼고, 때로는 차마 사람으로 할 수 없는 행동을 했기에

“악한 짐승”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디도 1:12).

 

그레데 성도들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복음에 대한 감격이 있지만

그들의 삶은 옛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가 그레데 교회를 돕고

그곳에 바른 지도자들을 세우길 부탁합니다.

디도서 1장에 나오는 지도자들의 덕목이 특별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그레데는 물론 그데데 교회가 타락했기에

다른 곳에서는 보통 그리스도인이 그곳에서는 탁월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2.

2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렇게 한 달을 보내고 새달을 맞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그레데 교인들과 같은 속성이 남아 있습니다.

현대인의 교양(?)으로 치장을 해서 보이지 않을 뿐 보기 흉한 생각과 행동들입니다.

주님 앞에 내놓고 회개하지만, 번번이 고쳐지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디도서의 그레데 교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습니다.

 

2월을 보내고 새달을 맞으면서

우리 속에 있는

무익하고 헛된 것(unprofitable and worthless)”을 멀리하기 원합니다.

 

선한 것을 행하는 것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또한, 참빛 식구들께서 행하는 대부분의 일은 선합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삶 속에서

“무익하고 헛된 것”을 골라서 뽑아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때 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사람들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디도 3:8)

I want you to insist on these things, so that those

who have believed in God may be careful to devote themselves to good works.

These things are excellent and profitable for people. (Titus 3:8)

 

하나님 아버지,

새달을 맞는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선하고 아름답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2. 28이-메일 목회 서신)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시몬이라는 구두장이가 시골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척 가난해서 겨울이 되었지만, 아내에게 변변한 외투 하나도 선물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아내의 외투를 마련하기 위해서 도시에 나갔지만, 가진 돈으로 술만 마시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술에 취한 시몬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청년이 교회앞에 맨몸으로 쓰러져 있습니다. 청년이 옷도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교회 앞에 쓰러져 있었다는 톨스토이의 묘사에서 당시 러시아 교회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 눈길을 주지 않았음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구두장이 시몬은 청년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외투를 입히고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시몬의 아내는 자신이 갖고 싶었던 외투는 그만두고 어디서 거지같은 청년을 데리고 온 남편을 구박합니다. 하지만 선한 마음씨를 가진 구두장이 부부는 오갈 데 없는 청년을 보살펴주고, 자신들의 구둣방에서 보조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미가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의 솜씨가 보통을 넘습니다. 어려운 구두도 척척 만들고 수선합니다.

 

하루는 시몬이 구두를 잘 만든다는 소문을 들은 한 부자가 하인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매우 비싼 가죽을 갖고 와서 까다로운 모양의 구두를 부탁했습니다. 만약에 부자의 요구대로 구두를 만들지 못하면 그를 감옥에 넣겠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시몬은 두려웠지만, 미가엘의 솜씨를 믿고 부자의 주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미가엘이 그 비싼 가죽을 다 오려서 구두가 아니라 죽은 사람이나 신을 법한 슬리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가게 문이 열리고 부자의 하인이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주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화처럼 목이 긴 구두 대신 시신이 신는 슬리퍼를 부탁했습니다. 시몬은 깜짝 놀랐고 청년 미가엘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한 부인이 쌍둥이 아이를 데리고 구두를 맞추러 왔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부인이 자초지종을 얘기해 줍니다. 쌍둥이는 부인의 이웃집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의 아빠가 죽고, 곧이어 엄마도 죽었는데 쓰러지면서 아이의 발을 눌러서 절게 되었답니다. 부인은 졸지에 부모를 잃은 두 아이가 불쌍해서 쌍둥이를 데려다 키웠는데, 그 와중에 자기 아들이 죽고 이제는 두 아이를 친자식처럼 돌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쯤 해서 톨스토이는 구두장이 시몬이 구해준 청년 미가엘이 누구인지 공개합니다. 그의 이름이 알려주듯이 미가엘은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벌로 맨몸으로 세상에 내려온 것입니다. 천사 미가엘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 세 가지 문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습니다.

 

천사 미가엘은 가난한 구두장이 시몬이 교회 앞에 쓰러진 자신에게 외투를 벗어주고 구둣방에서 일하게 해 준 것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 문제를 푼 것입니다. 으름장을 놓으며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명령하던 부자가 집에 가는 길에 죽는 것을 보면서 사람에게는 앞길을 예측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두 번째 문제도 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웃집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돌보는 부인을 보면서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미가엘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내주신 세 문제를 모두 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신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입니다. 천상의 사랑입니다. 구두장이 시몬은 교회 앞에서 맨몸으로 쓰러져있던 청년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셈입니다. 이웃집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키운 부인은 사람이 사랑으로 사는 것임을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천년만년 살 것 같던 부자가 집에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길을 인도하시고 결국에는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때 소망이 생깁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뤄 가실 인생과 세상에 대한 소망을 마음에 간직하고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2019년 2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성경의 식물들 (1): 떨기나무

우리가 사는 캘리포니아와 성경의 주요 무대인 이스라엘 사이에 공통점이 많습니다. 두 지역 모두 지중해성 기후로 분류됩니다. 우선, 비가 오는 우기와 비가 오지 않는 건기의 구분이 뚜렷하고 기간도 같습니다. 성경에서 이른 비는 우리 지역처럼 가을에 오는 비를 뜻하고 늦은 비는 우기가 끝나는 봄에 오는 비를 가리킵니다. 낮보다 밤에 기온이 내려가는 것도 같습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종려나무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 비유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포도나무, 우리를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에 비유할 정도였습니다. 포도나무는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실수였습니다. 우리 지역에도 포도나무가 많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겉은 번드르르하지만 본질을 상실한 예루살렘 종교의 종말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무화과나무는 물론 무화과 열매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살기 때문에 성경의 독특한 기후와 생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특히 세 번째 날에는 땅과 육지를 나누시고 땅에 식물이 자라게 하셨으니 온 세상이 초록으로 뒤덮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창조의 신비로운 능력과 지혜를 반영하듯이 세상에는 수많은 식물이 존재합니다. 성경에도 당시 팔레스타인의 대표적인 식물들이 100여 종 이상 등장합니다. 씨가 뿌려진 곳에서 평생을 지내다가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매우 순종적인 생명체들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두 달여 성경에 나오는 식물들과 그와 연관된 성경 본문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 속의 식물들은 큰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대신, 인물이나 사건을 설명하는데 보충 재료로 동원될 뿐입니다. 그렇지만 성경 속의 식물 중에는 하나님 말씀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거나, 겨자씨처럼 식물의 특성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번 연속 설교는 그런 식물들과 그와 연관된 본문을 함께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 살펴볼 떨기나무는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시나무 덤불입니다.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일종의 사막 식물입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모세는 떨기나무 수풀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떨기나무가 화염에 휩싸였지만 타지 않았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떨기나무에 하나님께서 불꽃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평범한 떨기나무가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상징이 되었고 이것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거룩한 곳이 되기 원합니다. 일상 속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눈으로 뵙고 만나기 원합니다.-河-

무엇으로 사는가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달 신문에 실을 칼럼 주제를 생각하다가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다시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벌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와서 세 가지 숙제를 해야 하는 천사 미하일과

그를 돌보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 세몬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 미하일에게 주신 세 가지 숙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하일이 교회 앞에서 헐벗은 몸으로 쓰러져 있을 때

구두 수선공 세몬이 다가와서 미하일을 그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오갈 데 없다는 얘기를 듣더니 구두수선 하는 일에 조수로 써주었습니다.

 

세몬의 따뜻한 환대를 경험한 미하일이 첫 번째 숙제를 마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한 부자가 까다로운 조건으로 가죽 장화를 부탁했는데

천사 미하일은 죽은 사람에게 신기는 슬리퍼를 만들었습니다.

부자의 신발을 망쳐 놓은 것입니다.

주인 세몬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부자의 하인이 와서 주인이 사고로 죽었다고 알립니다.

 

천사 미하일은 이 사건을 통해서 사람에게는

앞길을 미리 아는 예측력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발견했습니다.

두 번째 숙제도 마쳤습니다.

 

하루는 어떤 부인이 쌍둥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구두 두 켤레를 주문하는데

한 아이의 발이 비정상적이었습니다.

구두 수선공 세몬이 두 아이가 모두 친자식인지, 왜 발을 다쳤는지 물었습니다.

 

부인이 대답하기를, 이웃에 살던 여성의 아이랍니다.

여성이 죽었는데, 그 순간 한 아이 발 위로 넘어지면서 발을 다치게 되었고,

마침 부인에게 두살배기 아기에 있었기에 함께 젖을 먹이며 키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의 친자식이 갑자기 죽으면서

불쌍한 두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고 있었습니다.

천사 미하엘은 부인을 보면서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의 답을 찾았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2.

지난 6주에 걸쳐서 함께 나눈 <돌봄>이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임을 톨스토이를 통해서 다시 배웁니다.

 

인간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구두 수선공이 아내에게 값비싼 외투를 선물하기 위해서 시장에 갔다가

가진 돈으로 술을 먹게 될 것도 예측할 수 없던 일입니다.

기고만장했던 부자가 집에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앞을 내다보는 능력은 주지 않으셨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장착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주어진 인생을 아름답게 살라는 하나님의 부탁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삽니다.

 

요즘 아침 큐티 말씀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놓고

여러 가지 신학적인 해석, 교리적인 설명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그리고 깊이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까?”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일상에 쫓기고 세상과 섞여서 살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을 잃기 쉽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앞일을 알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삽니다.

부족하지만 ‘사랑’으로 서로 돌보며 살아갑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 5:44-45)

Love your enemies and pray for those who persecute you

so that you may be sons of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Matthew 5:44-45)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믿음과 사랑으로 사는 참빛 식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2. 21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