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1편 (3)

네 모든 길에서

 

사람은 <호모 비아토르>,길 위를 걷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생길이라고 하고 신앙의 여정이라고 부릅니다. 길 위는 언제나 복잡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 불안하고, 가만히 멈춰 있을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나그네 삶입니다.

 

길 위의 삶은 치열합니다. 편안하게 쉬고 있을 틈이 없을 정도로 이런저런 일들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지난 시간에 읽은 시편 91편 말씀대로 “밤에 찾아오는 공포, 낮에 날아드는 화살,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이 길 위를 걷는 우리 모두가 겪는 일상입니다. 그러니 삶이 고되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신앙의 경험을 통해 보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이런 어려움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햇볕이 비추듯이, 어려운 일도 모든 이에게 무작위로 닥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인생을 잘 관리하고 준비하면 어려움을 피할 확률이 줄어들겠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시편 91편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를 잃고 제국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아무래도 자유롭지 않은 속박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70년이 지나면 포로에서 해방될 것을 약속하셨지만, 기다림의 끝이 언제 올지 막연합니다. 믿음이 강해도 기다림은 언제나 어려운 법입니다.

 

그때 시편 91편 말씀은 이들에게 생수와 같았을 것입니다. 천 명이 왼쪽에서, 만 명이 오른 쪽에서 엎드러지지만, 재앙이 하나님 백성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 앞에서 안심했을 것입니다. 힘겨운 포로 생활이지만 다시 일어나서 소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 살았을 것입니다.

 

세상은 혼란스럽고 삶은 힘든데 그 틈을 타서 호위 호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듯이 약한 사람을 착취하는 악인들입니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사람 사는 곳에는 이런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화가 나고 속이 터질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보응하실 것이라는 말씀 앞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꿋꿋하게 선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하는 주의 백성들의 가는 길을 천사가 보호해 줄 것입니다. 손을 붙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쳐 넘어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 독사나 사자 같은 숨어있는 재앙도 발로 밟고 통과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피난처삼고 새해를 시작하는 참빛 식구들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의지하면서 새해를 살아갑시다 -河-

날개

좋은 아침입니다.

 

1.

제가 국제선 비행기를 처음 탄 것은

1992년 겨울이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본점이 있던 호주로 연수를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때는 김포공항발 호주행 비행기가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없었고

그것도 국적기가 아닌 호주 콴타스 항공이었습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는데

비행기 창문으로 빛이 따라오면서 깜빡이는 겁니다.

게다가 기체의 움직임도 심해서

불안함에 밤을 꼬박 샜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앉은 좌석이 날개 부분이었고

비행기 날개 끝에서 깜빡이는 빛이었습니다.

 

호주 시드니에 도착해서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날개 부분이 덜렁 열리는 것을 보면서

밤새 비상등을 켜더니 무슨 고장이 난 줄 알고

혼자서 마음을 졸였던 우스운 기억이 생각납니다.

 

2.

<Soar, 날아오름> 이라는 책에서

30년 이상을 조종사로 근무했던 저자는

비행기의 안전성에 대해서 조목조목 알려줍니다.

 

비행기 기체의 안전한 설계,

2중 3중의 안전장치,

비행기를 탈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 등을 설명하면서,

비행기 날개가 비행기의 안전 운항에 필수적임을 알려줍니다.

 

비행기 날개 끝에 살짝 위로 솟아오른 부분은

어릴 적 종이 비행기를 날릴 때 날개 부분을 접어 올리면

곧게 날아가는 원리라고 쉽게 알려주었습니다.

 

악천후나 비상 사태에서도

비행기는 날개와 더불어 평형을 유지하기에

그 무엇보다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3.

지난주일 시편 91편을 나누면서

“날개”라는 표현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날개 깃으로 자신의 백성을 덮어 주십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깃으로 덮어주는 것,

어머니가 아기를 옷깃으로 덮어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날개 아래 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날개를 활짝 펴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에

하나님을 향해서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했습니다.

 

비행기 날개로 인해서 안전성이 확보되듯이

하나님께서 날개 깃으로 우리를 덮으시니 안전합니다.

불안하고 힘들 때, 하나님 날개 아래로 피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한 걸음 더 나갑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처럼 솟아오른다고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사40:31)

 

4.

비행기를 안정적으로 운항하게 하는

날개 바로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날개 끝의 안전등을 보고 불안해하던 저의 첫 번째 비행기 탑승 경험처럼

행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날개 깃으로 덮고 계시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아닌지요?

 

2021년 한 해를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날아올라야 할 때는 독수가 날개 치며 솟아오르듯이 비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신감, 용기, 그리고 힘일 것입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시편 91편 4절)

He will cover you with his pinions,

and under his wings you will find refuge. (Ps91:4).

 

하나님,

힘들게 시작하는 새해지만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날아오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1. 14 이-메일 목회 서신)

 

 

 

시편 93편 (2)

하나님의 진실함

 

오늘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을 기억하는 주현절 첫째 주일입니다. 대강절(Advent)로 시작한 교회력은 성탄절을 거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나타나신 주현절에 이르렀습니다.

 

영어로 에피파니(Epiphany)라고 불리는 주님의 나타나심은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대강절에 함께 나눈 디도서 2장 11절에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라고 했고, 여기서 은혜는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찾아가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이 신앙입니다.

 

앞으로 6주간의 주현절을 보내면서, 우리 안에 나타나실 예수님을 기대합니다. 그 예수님을 만남으로 우리의 신앙에 깊은 깨달음이 임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찾아오셨듯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찾아가셨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세상이 알지 못했듯이,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나라를 잃고 성전도 무너지고 수 천마일 떨어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러자 자신들의 잘못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시편 91편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확인시켜 줍니다. 지존하신 전능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피난처와 요새가 되심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올무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전염병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의 날개로 이스라엘을 덮어서 보호하십니다. 날개는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던 그룹의 두 날개를 연상시킵니다.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타나심 속에 피하면 안전할 것입니다.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모든 재앙에서 건져주십니다:“밤에 찾아오는 공포, 낮에 날아드는 화살,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 그러니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주의 백성에게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올 한 해 진실하신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하시고 보호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의지하며 걷는 한 해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河-

들소의 뿔같이

좋은 아침입니다.

 

1.

팬데믹 기간 동안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마스크입니다.

그 중에서도 N95 마스크가 인기입니다.

 

N95마스크에 사용되는

특수 소재를 발명한 분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대만 출신의 피터 싸이(Peter Tsai)박사입니다.

 

싸이 박사는

재료공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1981년에 캔자스 대학에 유학 왔습니다.

 

박사과정 시절에는

여섯 개의 박사학위를 가질 정도의 500 학점을 이수했답니다.

자신의 전공은 물론 물리학을 비롯한 연관 학문을 공부한 것입니다.

 

학위를 끝내고 텍사스 대학의 교수가 된 싸이 박사는

1990년에 N95 마스크에 사용되는 특수 소재를 발명했습니다.

 

바이러스를 비롯한 미세 먼지를 막아주는 소재로,

처음에는 가정용 공기정화 필터를 생각했지만,

3M과 협업하면서 공사장이나 먼지가 많은 곳에서 일하는 분들,

의료진들을 위한 N95 마스크로 발전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시작되면서 N95 마스크가 각광을 받게 되자

싸이 박사는 수십 년 전 자신의 발명품이 인류를 구하는데 공헌하는 것에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2018년에 은퇴했는데, 코로나 이후

연구소와 기업들이 그의 자문을 구하는 바람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답니다.

 

2.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소띠 해입니다.

 

팬데믹으로 집에서 맞이하는 새해여서

여러모로 답답한 것도 사실입니다.

백신이 나왔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소처럼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싸이 박사가  자기 인생을 살다가 N95 특수 소재를 발명했고,

30여 년 후에 그것이 인류의 안전을 위해서 사용되듯이

우리가 걷는 현재의 인생 여정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되고 감사할까요!

 

2021년을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3.

주일에 살펴보는 시편 91편 다음 장에 보면

“들소의 뿔”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시92:10).

 

여기서 “뿔”은 권위의 상징입니다. 근사함입니다.

“들소”는 힘의 상징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주께서 들소처럼 내 뿔을 높이셨습니다”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뿔을 들소처럼 높이실 것을 기대하면서

올 한 해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소처럼 자신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 참빛 식구들께

들소의 강인함과 멋짐을 더해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시편 92:10)

But you have exalted my horn like that of the wild ox;

you have poured over me fresh oil. (Ps92:10).

 

하나님,

힘든 가운데도 열정을 갖고 새해를 시작하는

참빛 식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1. 7.이-메일 목회 서신)

시편 91편 (1)

전능자의 그늘 아래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새해에는 전염병이 사라지고 예전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백신이 나왔지만, 현재 추세로는 쉽게 전염병이 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작년보다 나아져서 후반기부터라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니 새해를 맞는 우리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희망의 빛이 저 멀리 보이는 것 같지만, 여전히 깜깜하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닫히면서 여러모로 힘든 참빛 식구들도 계십니다. 권사님들도 거의 일 년을 집에 계시고, 병원에도 편하게 다니실 수 없기에 마음과 몸이 힘드십니다. 이렇게 뿌연 안개 속에 새해를 맞은 적도 없습니다. 그래도 소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주어진 길을 걷기 원합니다.

 

새해 첫 달에는 그해의 교회 표어를 갖고 주일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 표어를 통해서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작년에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60:1)는 표어를 갖고 새롭게 시작하는 2020년대의 첫해를 힘차게 시작하길 원했습니다. 점점 기독교가 힘을 잃으니, 기독교는 물론 우리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다시 일어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3월부터 팬데믹이 오면서,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올해도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는 작년 표어를 그대로 갖고 살기로 했습니다. 같은 표어로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의 마음은 조금 다릅니다. 앞으로 10년을 내다볼 여유가 없습니다. 올해 안에 일상이 회복되고 우리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기나긴 재난의 어둠을 뚫고 빛으로 나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낙심과 절망의 세상에 빛을 비추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상황이 어떠하든지 일어나서 빛을 비추는 주의 백성이 됩시다.

 

앞으로 1월 한 달 동안은 시편 91편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도 무척 어려웠습니다. 나라를 잃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때 당시의 상황을 시편 다섯 권 중 네 번째 책(시편90-106편)에서는 “광야”로 묘사합니다. 모세의 인도로 광야 생활을 하던 옛날을 회상하면서, 다시 찾아온 광야 생활을 하나님 안에서 바르게 살기로 결심하는 말씀입니다.

 

시편 91편 기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 살면서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려운 시기를 사는 비결임을 다시 배웁니다. 새해를 맞는 우리도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하나님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올무와 전염병에서도 건지실 것을 믿고 힘차게 새해를 시작합시다. -河-

지금까지 지내온 것

좋은 아침입니다.

 

1.

2020년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였습니다.

(내년에도 같은 표어로 살기로 했습니다)

 

2020년이라는 새로운 10년(decade)을 시작하면서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한 단계 도약하길 기대했습니다.

 

무엇보다 2010년대는 기독교가 세상에서

힘을 잃고 반대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기간이었기에

2020년대에는 우리 자신은 물론 기독교가

다시 일어나서 빛을 발하길 원했습니다.

 

2.

그런데 웬걸,

2월에 한국이 신천지를 중심으로 코로나 홍역을 치르더니

한 달도 못되어서 미국도 코로나 폭풍에 휩싸였습니다.

뉴욕은 의료체계가 무너져서, 우리가 아는 지인들까지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지역은

일찍 문을 닫았기에 통제가 가능했지만,

3월 중순부터 교회도 문을 닫아야 했고

지난 9개월 이상을 각자의 자리에 흩어져서 예배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도 사업장 문을 열지 못하고

아이들도 학교에 갈 수 없습니다.

 

팬데믹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3.

물론,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지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간혹, 교회에 오지 않는 가족들도 간접적으로 예배에 참석하십니다.

 

사회활동이 줄어들면서

외로울 때도 있지만

내면을 돌아보면서 홀로서기를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팬데믹 초기에는 자연이 살아났고

거리에 자동차가 줄면서 오염도 줄었습니다.

 

그래도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온 가족이 집에서 지내는 것이나

영상으로 예배하는 것,

무엇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지길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4.

그리고 오늘,

2020년의 마지막 날을 맞습니다.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생각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지켜 주시고

모든 일을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한이 없는 주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여전히 깜깜해도

주의 사랑은 변함이 없음을 믿습니다.

 

그 사랑을 붙들고 새해를 맞습니다.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시편 145:7)

They shall pour forth the fame of your abundant goodness

and shall sing aloud of your righteousness. (Psalms 145:7)

 

하나님,

올 한해 동안 함께 하시고

여기까지 사랑으로 인도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12. 31이-메일 목회 서신)

모든 위로의 하나님

2020년 마지막 주일을 맞았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서 3월 셋째 주부터 교회에서 모이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길어야 두 달 정도 예상했는데, 어느덧 아홉 달이 흘렀고 당분간 온라인 예배를 지속해야 합니다.

 

예배뿐 아닙니다. 우리 모두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합니다. 직장에 나가거나 사업장에 가시는 분들도 제한된 시간을 일할 뿐입니다. 말 그대로 집에 갇힌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역시 한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아홉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권사님들도 거의 집에서 생활하시니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마음대로 외출하실 수 없고, 매번 마스크를 쓰고 나가시는 것도 여러모로 불편하실 것 입니다. 병원에도 자유롭게 가기 어려우십니다. 그래도 아홉 달을 잘 견디셨습니다. 이제 백신이 나왔고 권사님들의 경우 먼저 맞으실 수 있을 테니 조금만 더 견디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비즈니스를 하시는 참빛 식구들의 피해가 큽니다. 다시 식당들 문이 닫혔습니다. 사회활동이 줄고 자택 근무가 대세를 이루면서 세탁소도 어려움을 겪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그로서리도 어렵습니다. 이 밖에도 자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이 매우 큽니다. 정부의 추가 지원도 기다립니다.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으시길 응원하고 기도로 함께 하겠습니다.

 

이 밖에도 팬데믹으로 인해서 말 못할 어려움을 겪는 참빛 식구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마음이 힘드시고, 앞일을 생각하면 순간순간 두려움이 엄습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약함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계십니다. 우리의 상황이 어떻든지 신실하신 하나님의 위로를 구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위로”라는 표현이 열 번 등장하고, “환난”이라는 말씀이 일곱 번 나옵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사도 바울의 고백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바울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로하십니다. 어려울 때 찾아오시고 위로하십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도 우리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찾아오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과 십자가의 예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어려움을 이깁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환난 가운데 있는 이웃을 위로해야 합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이웃에게 하나님께 받은 위로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위로의 순환입니다.

 

팬데믹으로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결국에는 어떤 어려움에서도 구해주실 줄 믿습니다. 위로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