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장 강해 (1):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 로마서 1:16-17
찬양: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봉헌송: 이경민 지휘자
로마서 3장 강해 (1):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 로마서 1:16-17
찬양: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봉헌송: 이경민 지휘자
10월 한 달 동안 살펴보았던 교회사 속의 세 인물은 모두 로마서를 통해서 인생이 바뀌는 터닝 포인트를 경험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쾌락을 버리고 낮과 같이 단정히 행하라는 로마서 13장 13절 말씀을 들고 읽으면서, 젊음의 쾌락과 성공을 향한 욕망을 벗어나서 그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회의 교리를 굳게 믿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의로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탑의 경험”이라고 불리는 터닝 포인트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로마서 1:17절 말씀을 통해서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의 복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가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찾은 부흥 집회에서 사회자가 마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 것을 듣고 마음에 뜨거움을 경험했습니다. 웨슬리는 그 이후로 자신과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고 복음 전도자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세 명의 인물 외에도 신약성경의 로마서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예전에 로마서의 보석이라 불리는 로마서 8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 5장을 주일 설교에서 함께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로마서의 시작이며, 복음의 시작인 로마서 3장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살펴보면서, 자기 성찰과 우리 안에 임하는 은혜로 올 한 해를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로마는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성공을 위한 경쟁과 암투, 다양한 종교들의 전파, 쾌락은 물론 도덕의 무너짐이 절정에 달해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모습이 2천 년 전 로마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도 예수님을 믿는 교회가 세워졌고, 신앙을 지키고 교회를 세우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세상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는지 진단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순리대로 사용하지 않고 거꾸로 이용하고,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고 말하지만 실제 행함은 없고, 모든 사람이 죄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이 무엇인지 제시합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복음과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앞으로 살펴볼 로마서 3장 말씀을 통해서 교회사 속의 인물들처럼 우리 역시 말씀의 은혜에 깊이 빠지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河-
터닝 포인트 (4): 마틴 루터/ 로마서 1장 16-17절
찬양: 나그네와 같은 내가
지난 번에 살펴보았던 어거스틴은 “지향성”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바라보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갑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고 싶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젊음의 쾌락, 세상의 야욕, 심지어 자기를 매료시킨 학문에 시선을 두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가 아들의 회심을 위해서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건만, 하나님께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들은 신앙이었기에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신앙의 길로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만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한참을 돌아서 하나님께 왔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한없이 흘렸습니다. 서른두 살이 되도록 헛된 것을 바라보고 산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터닝 포인트를 경험했습니다.
웨슬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성 클럽을 만들어서 성경과 고전을 읽고, 엄격한 규칙을 지키고, 어려운 이웃을 방문하는 등 신앙적으로 탁월한 엘리트의 길을 걸어갔지만, 대서양의 폭풍우 앞에서 그의 신앙은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동안 바라보며 추구한 신앙이 소용없을 만큼 웨슬리의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올더스게이트 집회에서 마음의 뜨거움을 경험하고 나서야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몸소 체험하니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돌아선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도 터닝 포인트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생각이 판치는 당시의 교회에서 성직자가 되었고 로마 교황청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갈 정도로 의로운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바라본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신앙의 업적을 쌓으려는 교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자유함이 없었습니다. 노력하면 할 수록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만 눈에 들어와서 괴로웠습니다.
어거스틴이나 웨슬리가 그랬듯이 마틴 루터 역시 로마서 말씀을 읽는 중에 자기 안에서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낯선 의”가 들어와서 자신을 변화시킬 때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깨달았기에 “오직 말씀으로,”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가능함을 알았기에 “오직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임을 알았기에 “오직 은혜로”라는 종교 개혁의 표어를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터닝 포인트라는 제목의 연속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지를 깊이 살펴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지향하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河-
양병모 목사님: 열매 / 마태복음 7장 12-23절
찬양: 내 목자는 사랑의 왕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재직하고 있던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앞에 교황과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게시했습니다. 루터는 잘못된 길로 가는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관심있는 사람들과 학문적인 토론을 하고 싶었습니다. 루터가 반박문을 게시하기 2년 전부터 독일 교회가 베드로 성당 건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면죄부를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면죄부를 판매하면서, 면죄부 통에 동전을 넣는 순간 연옥에 있던 조상들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엉뚱한 주장을 하면서 백성들을 오도했습니다. 의식 있는 사람들은 면죄부 판매에 반대했고, 루터는 면죄부 판매는 물론 당시 교황과 교회의 그릇된 모습을 고발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루터가 95개조에 이르는 반박문을 게시할 때만 해도 루터의 행동이 기독교는 물론 세계 역사를 바꿀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마틴 루터 역시 자신의 작은 행동이 교회를 변화시키는 터닝 포인트가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가톨릭 교회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화약고처럼 가득 차 있던 세상에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종교개혁에 불을 붙이는 첫 번째 시도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개혁의 물결은 독일은 물론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마틴 루터에게는 개혁을 주도할 정도의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는 협심증에 시달릴 정도로 소심한 인물이었습니다. 수많은 논쟁에 휘말렸습니다. 종교 재판에서 가톨릭 사제의 신분도 박탈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마틴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등 주어진 길을 담대하고 꿋꿋하게 걸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개신교(프로테스탄트)는 종교 개혁자 루터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도화선이 되어서 시작된 종교개혁의 열매가 현재 개신 교회입니다. 그러니 개신교회는 교회나 사회의 그릇된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개혁을 주도할 사명이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개신교회의 모습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다시”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대일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첫 번째는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혁은 하나님 앞에서의 참회로 시작됩니다.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과 인간적인 계획을 하나님의 일로 착각하거나 둔갑시키는 것이 타락과 죄의 길임을 종교개혁 주일을 맞으면서 깊이 생각하기 원합니다. 개인의 신앙과 교회 그리고 우리 사회가 종교 개혁 정신을 기억하며 날마다 새롭게 되길 바랍니다.-河-
터닝 포인트 (3): 요한 웨슬리/ 갈라디아서 5장 2-6절
찬양: 주안에 있는 나에게
10월 한 달 동안 “터닝 포인트”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미국 생활이 단조로워서 직장(또는 학교)과 집 그리고 주말에 교회에 오는 것이 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몸과 마음이 늘 쫓기는 나그네 인생이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챙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번 연속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길목에 서곤 합니다. 완전히 돌아서는 경우부터 좌나 우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 순간입니다. 알고 보니 우리만 그런 순간을 맞는 것이 아니라,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도 전환점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사명을 발견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에게 닥치는 선택의 순간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계기가 되길 바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터닝 포인트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요한 웨슬리는 감리교의 창시자입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될 무렵인 1703년 성공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열아홉 형제 가운데 열다섯 번째였는데 어머니 수산나로부터 신앙교육을 잘 받고 자라서 일찍이 성공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옥스퍼드에서 가르치면서 동생 찰스 웨슬리와 친구 두 명과 함께 신성클럽(Holy Club)을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3-4일 저녁에 모여서 성경을 읽고,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하면서 신앙을 연마했습니다. 가난한 자와 감옥에 갇힌 자들을 방문하는 등 신앙과 삶이 통합된 온전한 신앙을 추구했습니다. 신성클럽은 하도 엄격하고 스스로 규칙을 잘 지키는 그룹이었기에 사람들은 이들을 규칙쟁이(Methodist)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현재 감리교회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웨슬리가 미국 조지아에 선교를 와서 미국 감리교회가 시작되었는데, 오고 가는 배 위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웨슬리는 행여나 죽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풍랑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독일 모라비안 교도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영국에 돌아온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배우고, 이성과 규칙에 치우친 자신의 신앙을 놓고 고민하다가 올더스게이트라는 곳에서 열린 부흥 집회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사회자가 말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을 때 마음에 뜨거움을 체험했습니다. 그 이후로 웨슬리는 이성적인 신앙과 더불어 성령의 역사를 통한 체험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신앙이 머리에 머물면 불안하고 신앙이 표류할 가능성이 큽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신앙이 내려오는 터닝 포인트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이유입니다.-河-
터닝 포인트 (2): 어거스틴 2/ 롬 13:13-14
찬양: 오 놀라운 구세주
어르신들이 참석하시는 우리 교회 수요예배에서는 성경을 한 장씩 공부합니다.
지난 1년 동안은 예레미야서와 마가복음을 읽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레미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계속해서 죄의 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화가 치밀 정도로 안타까웠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보면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짐을 보았습니다. 또한 예레미야서 한가운데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알리는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위치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말씀이 너무 딱딱해서 중간에 마가복음을 읽었습니다. 복음서 말씀은 늘 은혜롭습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선포하시는 말씀,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우리에게 임한 구원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묶인 사자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섬기는 종으로 한평생을 사신 예수님의 모습이 마가복음 전체에 잘 드러났습니다.
앞으로 수요예배에서는 창세기를 읽습니다. 중간에 복음서를 읽고 오면 일 년 넘게 읽을 말씀입니다. 창세기는 말 그대로 인류는 물론 세상의 기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아담과 이브로 인해서 낙원을 잃고 죽음과 노동, 관계의 단절과 소외가 인류에게 닥쳤습니다. 창세기 이후의 성경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노력을 전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 사랑이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 역시 창세기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지는 과정을 그립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고, 이삭의 아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겼다는 뜻의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을 갖게 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됩니다. 형들에 의해서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되고 야곱과 그의 가족이 가뭄을 피해서 이집트로 간 것이 400년 종살이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창세기는 이어지는 출애굽의 서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요 예배에 참석하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먼 거리와 바쁜 삶으로 참석하지 못하시면 안내석에 준비되고 이메일로 보내드리는 교재를 참고해서 함께 창세기 말씀을 읽어가기 원합니다. 말씀에 굳게 서는 우리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