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올 영화 한 편이 올봄 프랑스를 기점으로 세계 각국에서 차례로 개봉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내년에, 한국에서는 올 성탄절에 개봉을 앞둔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입니다. 인터넷에서 예고편과 영화평을 둘러보니, 쌩떽쥐뻬리의 원작 어린 왕자를 현대판으로 바꾼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어린 왕자>는 제가 매우 좋아하는 소설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모로 암담했던 대학 시절 구내서점에서 문고판 어린 왕자를 구입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17년 전 미국에 올 때 전공서적을 마다하고 챙겨왔던 애독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책꽂이에서 어린 왕자를 꺼내보니 모서리가 헤어지고 색깔도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제 이니셜과 함께 “H.S.Y. 82.6.7 구내서점”이라고 쓰인 메모가 저를 반깁니다. 단숨에 다시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50대 중반에 읽는 어린 왕자는 33년 전 청년 시절에 읽었을 때와 또 다른 느낌입니다.

 

소설은 사하라 사막에 비상착륙한 비행사가 소행성 B612에서 온 어린 왕자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저자 생떽쥐뻬리가 기호를 붙여 가면서 그린 그림이 소설의 흥미를 더해줍니다. 첫 번째 그림은 중절모처럼 생긴 그림입니다. 어른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모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린 왕자는 코끼리를 삼킨 뱀이라고 대답합니다.

 

어린 왕자는 비행사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런저런 모습으로 양을 그려줍니다. 그런데 어린 왕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구멍이 세 개 뚫린 상자를 그려주니 매우 만족해합니다. 모자 속에서 코끼리를 삼킨 구렁이를 보았듯이 추위를 피해서 상자 속으로 들어간 양을 보았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는 일입니다.

 

어린 왕자는 자기가 사는 소행성에 무성하게 자라는 바오 밤나무를 없애느라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어쩌다 날아온 꽃씨에서 자란 장미와 친해지려 하지만 관계가 틀어지면서, 여섯 개의 행성들을 차례로 여행하면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혼자 살면서 왕이라고 자처하는 왕자병에 걸린 사람, 자기를 칭찬해 주는 말만 듣고 싶어 하지만 속은 비인 허풍쟁이, 술 마시는 것을 후회하면서도 술을 끊지 못하는 주정뱅이, 5억 개의 별을 세고 그것이 모두 자기 것인 양 숫자에 빠져 사는 상인, 행성이 하도 빨리 돌아서 1분마다 아침과 저녁을 맞기에 무의미하게 불을 켜고 끄기를 반복하는 점등인, 다른 이에게 들은 말과 이론에만 의존하는 지리학자입니다. 어린 왕자가 차례로 만난 사람들은 세상살이에 찌들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어른들의 궁색하고 불쌍한 모습입니다.

 

어린 왕자는 일곱 번째로 방문한 지구에서 여우를 만납니다. 여우에게서 길들인다는 말을 듣습니다.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여우의 말에 소행성에 두고 온 꽃을 생각합니다. 장미꽃과 자신이 진정한 관계 맺기에 실패해서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자기 행성에는 하나뿐인 장미꽃이 지구에 수없이 만발한 것을 보면서 자신의 지나친 집착도 깨닫습니다. 어린 왕자는 여우가 남긴 마지막 말을 되새겨봅니다:: “잘 가라. 비밀을 알려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부터 보아야 한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조그만 마을 베들레헴 그것도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가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과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뿐이었습니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가 예수님임을 마음속으로 바라본 사람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 왕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떴을 때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 속에서 생명과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기가 좋아졌는지 거리에 자동차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샤핑몰에는 사람들이 넘칩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사고팔고 있는지, 행여나 어린 왕자가 방문했던 소행성 사람들처럼 의미 없는 일에 몰두하는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칩니다. 어린 왕자가 안내하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서 성탄절을 맞고 싶습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누운 아기가 예수님이심을 알아차리고 그 아기 앞에 조용히 무릅 꿇고 경배하기 원합니다. 복된 성탄 맞으십시오. 메리 크리스마스!  (2015년 12월 24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마가복음 6 : 대강절에

올 해가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달력이 한 장 남을 때마다 여러가지 생각이 납니다. 지나 온 한 해를 생각하면서 아쉬움에 젖기도 하고, 또 감사한 마음을 갖게되고, 동시에 남은 한 달을 잘 지내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12월은 어느 달 보다 빨리 지나갈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한 해를 마무리하길 원합니다.
12개월로 구성된 달력 외에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부활과 성령 강림으로 이루어진 교회력을 갖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주일에 모여서 예배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모든 신앙의 근거를 부활에 두었고,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서 살려는 신앙 전통이 생겼습니다. 그러한 시도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4세기 경부터 예수님의 생애에 맞춘 교회력으로 발전했습니다.
교회력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기다리는 대강절(advent)로 시작해서, 성탄절과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념하는 주현절(epiphany), 사순절(lent)과 부활절을 정점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절로 마무리됩니다. 일년 가운데 절반을 성령강림절 주간으로 지키는데, 강단 색깔이 초록색이듯이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신앙이 자라가는 기간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강절 (혹은 대림절)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 4주 전부터 시작됩니다. 강단보는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보라색입니다. 강단에 촛불을 하나씩 켜가면서 대강절을 맞습니다. 우리 교회 강단에는 촛대가 없으니 온 교회가 마음 속에 촛불을 하나씩 켜 놓으면서 대강절 4주간을 보내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12월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보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십니다. 마지막 때에, 선과 악을 심판하시고 온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만왕의 왕께서 오십니다.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나심은 모든 사람들을 품어주시고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어둔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매 주일 마음 속에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빛되신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이처럼 대강절은 기대와 소망의 절기입니다. 몸과 마음이 바쁜 연말이지만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뜻깊게 대강절을 지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7장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동을 일일히 트집잡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혜롭게 이들을 물리치십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수로보니게 출신의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바리새인들과 달리 수로보니게 여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귀신들린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 앞에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는 개가 되어도 괜찮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여인의 겸손한 마음과 믿음이 딸을 고쳤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에게 예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河-

마가복음 5 : 둔한 마음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추수감사 주일은 1620년 12월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해서 혹독한 겨울과 일 년 동안의 적응기간을 보낸 후에 첫 번째 추수를 한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축제를 벌인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왔지만, 추위와 풍토병으로 절반에 가까운 동지들을 잃었습니다. 그나마 이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인디언 추장 마싸소이트와 영어를 할 줄 알았던 스콴토가 집을 짓고 사냥을 하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청교도들은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함께 감사의 잔치를 했습니다.
이처럼 추수감사절 정신속에는 참된 신앙을 찾아서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의 신앙과 열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신대륙에 도착하자마자 혹독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왔지만 그들 앞에 닥친 것은 가족과 신앙의 동지들을 잃는 아픔과 고통이었습니다. 이들은 꿋꿋하게 견뎠습니다. 돕는 손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올 한 해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신앙 가운데 힘차게 한 해를 시작했지만 지난 열한 달의 여정이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기도 했고, 몸과 마음이 힘든 말 그대로 순례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겨운 인생길을 걸어가는 데 도움을 준 손길들과 함께 길을 걷는 동지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생면부지의 인디언들이 청교도들을 도왔듯이 예상하지 않은 도움의 손길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심을 몸소 경험한 것입니다. 한 해 동안 함께 해준 가족들과 참빛 식구들과 신앙의 동지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은 하나님 앞에서 한 해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께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이웃들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절기입니다. 마음이 푸근해지고 우리가 여전히 살맛 사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6장에는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만 보면서 배척했습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6장 중간에는 세례요한의 죽음이 나옵니다. 개인적인 앙심을 품고 옳은 소리를 한 세례요한을 죽게 한 헤로디아는 안하무인입니다. 마음이 완악합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는 기적을 경험한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 폭풍이 불어닥치자 두려움에 떱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고 바람을 잔잔하게 하십니다. 이것을 두고 마가는 제자들의 마음이 굳어져서 두려워했다고 일러줍니다.
행여나 우리 안에도 굳은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새 영으로 부드럽게 되길 원합니다(겔36:26). 굳은 마음이 있으면 감사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이웃들의 사랑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 되기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4 : 기사와 이적

신약 성경의 복음서에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 표적을 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표적(sign)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적 자체보다도 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표적 이후에 그에 대한 설명이 등장합니다. 처음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마태, 마가,누가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합니다. 비슷한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공관복음서에도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자주 소개합니다. 요한복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지만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똑같이 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는 것은 예수님의 위치에 올라가려는 것이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복음서의 기적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자연을 다스리시고, 병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실 수 있는 분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의 표적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복음서에서 발견되는 기적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경우 신앙생활을 하면서 병 고침을 받거나 귀신이 쫓겨나는 기사와 이적을 경험하곤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이자 놀라운 체험입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경험하면 아무래도 신앙에 확신이 생기고 역동적인 신앙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기사와 이적에 매달리는 신앙은 건전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2절에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보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표적만을 구하고 집착하면 신앙이 왜곡됩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던 2천 년 전과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당시는 의술도 발달하지 않았고, 병에 걸리면 죄를 지은 결과라고 믿던 시대였습니다. 글을 읽거나 쓸 수 있는 인구가 매우 적어서 서기관들이 성경을 풀어주고 대신 글을 기록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대였기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요즘 시대는 꼭 기적이 아니어도 하나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의술을 통해서 병을 고치면서도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사와 이적을 통해서 또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온전해 지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명령하시니 죽음에서 일어났습니다.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죽음의 세력이 침투해 있다면 달리다굼하고 일어나면서 기적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河-

터키 사면식

좋은 아침입니다.

1.

추수감사절은

1620년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첫해 수확을 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했으니

40여 년 동안 지켜 온 미국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추수감사절 전날

백악관에서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립니다.

칠면조 한 마리를 풀어 주는

터키 사면식(turkey pardoning)입니다.

혹자는 링컨 대통령이,

혹자는트루먼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부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 행사를 정례화한 사람은

조지 부시 (아버지) 대통령이랍니다.

어제도 오바마 대통령이 두 딸과 함께

백악관에 뽑혀 온

터키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2.

해마다

약 4천5백만 마리의 터키가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릅니다.

정확한 유래는 설왕설래하지만

아마도 죽어가는 그 많은 터키를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백악관에서 한 마리 터키를 (사실은 후보까지 두 마리)

대표해서 살려주게 된 것 같습니다.

추수감사절 터키는 특정 농장에서 7월쯤 부화한 새끼들 가운데 응모해서

행사 기간 동안 순하게 있을 우량 터키를 선정합니다.

보통 몸무게가 40파운드를 넘고, 날개 길이가 6피트 이상입니다.

올해의 터키는

우리 지역 근처 모데스토(Modesto) 농장에서 길러졌습니다.

대통령 앞에 앉아 있던 터키가 “정직”이고

후보로 뒤에 있던 터키 이름은

“아베(Abe, 링컨 대통령의 별칭)였습니다.

백악관에서 실시한 트위터 공모에

캘리포니아 아이들이 많이 참여했고,

두 마리 터키를 선정하는 과정에도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답니다.

사면된 터키들은

해마다 각기 다른 농장으로 옮겨져서 여생을 마감하는데

체중을 너무 불린 나머지 심장마비나 건강상의 이유로

이듬해 추수감사절까지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하면서 덕담을 하거나 조크를 합니다.

올해 오바마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아쉬웠는지,

빨리 커 버린 딸을 보면서 흐뭇했는지,

아니면 흰색 터키를 보면서 하염없이 늘어난 자신의 흰머리를 생각했는지

다음과 같은 조크를 했답니다:

“터키는 날지 못하지만, 시간은 날아갑니다

(Time flies, even if turkeys don’t).”

오바마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아주 달갑게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왜 하는지 의미가 혼란스럽다는 식입니다.

그래도 전임 대통령들이 했으니 특유의 농담을 하면서

“정직”과 “아베”를 살려 준 것입니다.

4.

초등학생들이 올해의 터키에게

“정직”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정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솔직히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두 눈을 가진 원숭이가

한 눈 가진 원숭이 마을에 가서

한눈을 감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요예배에서 배우는 잠언에서는

끊임없이 “정직”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솔직하게, 정직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바른 삶이라는 교훈입니다.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5:8)

The prayer of the upright is acceptable to him. (Proverbs 15: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합당이 여기시는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5.

그나저나

어제 사면을 받은 “아베”와 “정직”이

남은 생을 편안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추수감사절 연휴를

감사와 평안 가운데 보내시고

주일에 기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연휴동안 참빛 식구들께 쉼을 주시고

힘차게 새 달을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26 이-메일 목회서신)

깔끔하게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새벽 기도회에서는

역대하 27장을 읽었습니다.

하루에 한 장씩 성경을 함께 읽고

10분 내외로 말씀을 전하는 새벽기도회 시간에

본문 말씀을 모두 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4절과 5절까지 있는 찬송가를 불렀고

말씀도 자세히 전했건만 5분이 남았습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27장이

단지 아홉 절이었기 때문입니다.

25세에 왕이 되어서

16년 간 남쪽 유다를 다스렸던 “요담”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웃시야는 정치를 잘했지만

성전에서 제사장의 일을 자신이 행하다가 그만

나병에 걸려서 남은 인생을 격리된 채 살았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아마샤 역시

처음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면서 영토를 확장했는데

에돔을 물리친 후에

에돔에 있는 신상을 갖고 와서 숭배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나중에는 쿠데타가 일어나자 피난가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아버지 웃시야나 할아버지 아마샤에 못지 않게

요담 역시 성전을 증축하고, 영토까지 확장하는 등

나름대로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그의 신앙과 통치가 끝까지 어긋나지도 않았습니다.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역대하 27:6)

So Jotham became mighty, because he ordered his ways before the Lord his God. (2Chronicles 27:6)

2.

요담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보기좋게 정돈된 인생을 사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길게 나열해서 보여주는 지루한 인생보다

아홉 구절로 단순하게 정리된

요약판 인생도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4S로 표현하곤 합니다:

silent, simple, strong, sacrificial.

그렇습니다.

이제 한달여 남은 올 한해 우리의 삶이

단순하고(simple) 강력하게(strong) 마무리되길 원합니다.

거기에 하나님 앞에서의 조용함(silent)과

이웃을 향한 희생(sacrificial)이 더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추수감사절을 앞 둔 참빛 식구들의 삶이

주님 앞에서 깔끔하게 정돈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19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다음 뉴스에 들어가 보니

한국의 한 개그맨이

불안장애(anxiety disorder)로 인해서

모든 활동을 잠시 중단한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인기를 많이 얻었지만

그에 비례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느 날 갑자기 물거품처럼 인기가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무척 힘들어했답니다.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인기라는 것이 아침 안개와 같아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인기를 얻어서 꼭데기에 올라갈수록

내려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더 올라갈 데가 없으니 결국 내려갈 일만 눈앞에 떠오르겠지요.

기사에는 비슷한 증상으로 고생하는

다른 인기 연예인들도 소개했습니다.

TV 앞에서는 활짝 웃고 있지만

뒤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안타까웠습니다.

2.

현대인들은 염려와 근심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삽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깊은 어둠이 계속될 것 같은 불안감,

일이 너무 잘 풀려도

혹시나 좋지 않은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염려,

갑자기 닥쳐오는 인생의 폭풍 등등

우리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유인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쓸데없는 경쟁의식도

불안과 초조함에 한몫을 합니다.

지난 설교에서

염려는 우리 안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dwelling care).

염려는 우리를 서서히 갉아먹는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corroding care).

그래서 염려가 신앙의 적이라고 했습니다.

염려가 생기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염려를 일으킨 바로 그 문제를 붙잡고 기도하길,

염려가 생기는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부르시길 제안했습니다.

성경에

염려와 근심 그리고 두려움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 모두 명령입니다.

매우 강력한 명령입니다.

3.

우리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인기 연예인들의 정도는 아니어도

우리 안에 있는 염려와 불안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마음과 삶을 휘저어 놓습니다.

솔직히 많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마음에 품고 기도할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베드로전서 5:7)

Casting all your anxieties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1 Peter 5:7)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을 꼭 붙들어 주시고

삶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12 이-메일 목회서신)

감사일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접경지역을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였습니다. 멀리서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향해서 손을 흔들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시니, 제사장에게 뛰어가는 동안에 나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분명히 열 명이 병에서 고침을 받았는데 예수님께 나와서 감사한 사람은 당시 유대인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 한 명뿐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은근히 섭섭하셨는지 “나머지 아홉은 어디 갔느냐?”고 넌지시 말씀하십니다.

열 명 가운데 한 명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습니다. 이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면, 하나님께서 열 가지 은혜를 주시지만, 진작에 하나님께 나와서 감사하는 경우는 한 번뿐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염려와 근심 그리고 불안이 아홉이라면, 감사하는 마음은 달랑 하나일 때도 많습니다. 이렇듯 감사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에서 감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리를 쫓아 살게 하셨습니다. 가족과 가까운 이웃들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이 추수감사절인데 이웃의 도움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생각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염려가 사라집니다. 이처럼 감사는 하나님은 물론 이웃과 우리 자신을 향합니다.

감사의 유익은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서 입증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감사가 몸과 마음의 건강에 도움을 줍니다. 감사에 익숙한 사람은 활력이 넘치고 매사에 긍정적입니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현저하게 낮습니다. 알코올이나 약물과 같은 중독에 빠질 위험도 낮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잠이 쉬들고 숙면을 취합니다.

우리 안에 감사성향이 선천적으로 50% 차지하고 있답니다. 절반이 감사하는 마음이라니 앞에서 소개한 문둥병자의 예보다 감사하면서 살 확률이 높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절반은 훈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감사도 배워야 하고 훈련해야 함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인간의 심리와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훈련으로 감사일기 쓰기를 추천합니다. 실제로 100명의 대학생을 세 그룹으로 나눠서 첫번째 그룹은 일주일 동안 감사일기를 쓰게 했고, 두 번째 그룹은 일주일 동안 화나게 한 일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나머지 세 번째 그룹은 아무 일이나 일기장에 기록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 감사 일기를 쓴 학생들이 마음과 생각이 긍정적이었고 학업 성취의욕도 훨씬 높았습니다.

감사일기 쓰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감사일기는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좋은 아내, 좋은 가족”처럼 제목만 나열하면 감사일기가 무미건조해 지고 멀지 않아 일기장을 덮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주어서 감사했다” 또는 “밖에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딸아이가 달려와서 허그해 주어서 고마웠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루에 다섯 가지씩 감사의 이유를 찾아서 일기장에 적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섯 가지를 찾기가 쉽지 않고, 매일 같이 비슷한 내용만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감사 제목을 찾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스쳐 지나가던 일들 속에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일기장 밖으로 나가서 하루에 한 번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사 전도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감사가 습관이 되고, 성품에 녹아들어서 인격이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올 한 해도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추수감사절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감사일기를 쓰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 가운데 한 명이 예수님께 왔듯이 적어도 일 년 중 마지막 한 달을 감사의 달로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2015년 11월 26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마가복음 3 : 감사하는 마음

어느덧 11월도 일주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일 년 중에 11월은 어찌 보면 꽤 어중간해 보입니다. 10월이 지나고 11월에 접어들면 자신도 모르게 한 해가 다 갔다는 생각이 들고, 연말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추수감사절만 지나면 크리스마스 세일 광고들이 우체통을 가득 채우고 캐럴이 흘러나오면서 한 해가 지나갔음을 알립니다. 그러다 보니 11월은 빠르게 때로는 없는 것처럼 훌쩍 지나갑니다.

저는 11월을 맞을 때마다, “감사”를 떠올립니다. 물론 우리 삶에 늘 감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감사보다 불평, 염려, 두려움이 더 많습니다. 믿음으로 부정적인 마음들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그런 마음마저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려 하지만 생각처럼 조절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가사 그대로 받은 복을 세어 보면서 11월을 보내려고 애를 씁니다

올해 우리 교회를 돌아보니, 감사할 제목들이 떠오릅니다. 어르신들께서 건강하게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젊은이들도 힘껏 교회를 섬겨 줍니다. 물심양면으로 은밀하게 교회를 섬기는 손길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도 태중에 생겼고 또 엊그제는 이재웅/조선미 가족에 승호가 태어났습니다. 여전히 빈자리가 있고 떠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채워가십니다. 찬양대와 찬양팀의 섬김, 여선교회와 남선교회의 꾸준한 섬김,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선생님들의 은밀한 섬김, 권사님들과 임원들의 기도와 섬김 등 감사할 뿐입니다.

남선교회 기도회, 참빛 보이스, 부부 세미나, 네팔 선교 음악회, 강찬 전도사 초청 등 올해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행사들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부족하고 아쉬운 것을 생각하면 한이 없습니다. 반면에 감사한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한 해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이제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찬양대와 남성 중창단, 주일학교가 정성껏 추수감사 주일과 성탄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선교회에서도 예년과 같이 추수감사절 만찬을 준비하시겠지요.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갑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성도님들 각자의 삶도 한 해의 끝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늘 만족스러울 수 없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몸이 예전만 못하십니다. 몸이 약해지시니 마음도 때로는 신앙도 내려앉습니다. 일어나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연약해지신 몸과 마음을 붙드시고 하늘의 평화를 깊이 누리셔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삶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겹습니다. 이기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어려움을 훌쩍 뛰어넘어야 합니다. 주님의 백성으로 힘차게 그리고 꿋꿋하게 부르심의 목적을 쫓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여정의 한가운데 감사가 임할 때 멋지고 근사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씨 뿌리는 비유 속에 나오는 네 가지 마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밭의 네 가지는 우리의 마음을 표시합니다. 우리 안에 네 가지 마음이 공존합니다. 그중에 좋은 밭의 비중이 커져서 열매맺는 신앙과 삶이 되길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2 :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지난 주일 설교에서 매우 빠른 진행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하는 것이 마가복음의 특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가버나움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다시 가버나움에 돌아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갈릴리 지역은 물론 갈릴리 호숫가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과 같은 이방 지역까지 포함한 순회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갈릴리에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서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 앞까지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고정관념을 깨는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서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지붕을 뚫고 구멍을 내서 중풍 병자가 누운 상을 예수님 앞으로 내리는 방식입니다.

지붕을 뚫고 병자를 내릴 생각을 한 것도 파격이고, 지붕이 뚫어지는 동안 소음과 먼지를 참으신 예수님도 보통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더 파격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데리고 와서 지붕에서 내려보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5절). 병을 고치시기에 앞서, 죄를 사해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 파격입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서기관들이 하나님도 아닌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 어떻게 죄를 사할 수 있느냐고 신성모독 죄를 지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의 속마음을 알아채십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얻으라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 가운데 어느 것이 쉬운지 물으십니다. 두 가지 모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죄를 사하는 것이나, 일어나서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막1:1). 곧이어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향해서 일어나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자리를 가지고 모든 사람 앞을 지나갑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중풍 병자를 일으키신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이한 점은 예수님의 사역에 반대하고 시기하는 서기관(당시의 엘리트이며 성경학자)들과 같은 적대세력이 처음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보았고, 자신들의 지식과 신앙 전통에 매여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지붕을 뚫어서 중풍 병자를 내려보낸 친구들의 믿음과 대조적입니다.

믿음은 예수님 앞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지붕을 뚫는 용기와 파격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일으키실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중풍병자를 고쳐주셨고 죄 사함까지 받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 예수님을 우리도 믿고 있습니다. 다음 한 주간 죄를 사하는 권세와 중풍 병자를 일으키신 능력의 주님을 의지하고 일어나서 힘차게 걸어갑시다. -河-